AIum Press 저작물
파인애플
- 출판
작품 정보
- 작성
- 2026-08-15
- AIum Press 초판
- 2026-10-04
내일은 아버지의 세 번째 기일이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한동안 생각했다. 별로 마땅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파인애플을 사러 마트에 갔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입원하시기 전에 먹고 싶다고 했던 것이 파인애플이었다.
그때도 아버지와 마트에 갔었다. 사려고 했던 통째로 된 파인애플은 없었고, 잘라서 플라스틱 통에 담아놓은 것만 있었다. 금방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버지는 괜찮다고 하셨던 것도 같다.
나는 먹기 편하실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걸 내가 사드렸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사드렸던 것 같기도 하고, 다음에 올 때 하나 사오겠다고 말하고 그냥 돌아왔던 것 같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그 뒤로 내가 따로 파인애플을 사 들고 찾아간 적은 없다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 작은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는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그래서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그날 마트를 다시 걸어본다. 아버지는 어디쯤 서 있었고, 나는 무엇을 들고 있었는지 생각해본다. 하지만 오래 들여다볼수록 기억과 상상이 섞인다. 너무 여러 번 생각해서인지, 이제는 무엇이 기억이고 무엇이 내가 바라는 장면인지 잘 모르겠다.
오늘 마트에서 파인애플 앞에 서 있다가 가격표를 보았다.
사과 몇 알보다 쌌고, 배 하나보다도 쌌다.
나는 잠깐 웃을 뻔했다.
아버지는 이것도 알고 계셨을까.
아버지는 살아 계실 때 제사는 이제 필요 없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 말을 들을 때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내가 언젠가 제사를 제대로 차려드릴 형편조차 되지 않을 것을 아셨던 걸까.
아마 그럴 리는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내게 모자란 것 없이 주셨다. 오히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주셨다.
그런데 나는 오늘 제일 싼 과일 한 알을 사서 배낭에 넣고 자전거를 탔다.
돌아오는 길,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오르던 오르막에서 숨이 찼다. 등에 업힌 파인애플 한 알이 자꾸 느껴졌다.
뾰족한 잎이 등을 찌른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따끔거렸다.
등이 아니라 속이 그랬다.
나는 오르막을 오르며 다시 생각했다.
아버지는 알고 계셨을까.
내일 아침이면 술 한 잔 따르고 파인애플을 잘라 상에 올릴 것이다.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울 것이다.
소리 내어 한참 울고 나면 조금은 개운해질까.
그래도 사진 속 아버지와 마주 볼 때는 환하게 한 번 웃어드려야지.
그리고 나는 아마 또 그날의 마트를 생각할 것이다.
너무 오래, 너무 여러 번 돌아가 본 기억이라 이제는 그날이 실제보다 더 멀리 있는 것 같다. 기억하려 할수록 오히려 희미해지는 것도 있는 모양이다.
이제는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그날 내가 파인애플을 사드렸기를 바란다.
사드렸던 기억이, 어느 날 문득 돌아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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